역사를 뒤바꿀 정도의 방어력을 가졌던 안시성
우리나라의 역사를 뒤바꿀 정도의 큰 전쟁이 있었던 시기와 위인들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에 명량해전을 통해 일본군을 무찔렀던 이순신장의 역사와, 당나라군대에 맞서서 싸웠던 안시성의 양만춘 장군이 그들이다. 이순신 장군 관련 영화는 다뤄봤으니 오늘은 그 시대보다 더 과거에 있었던 역사 영화 '안시성'을 가지고 왔다.
임진왜란은 1592년도에 발발했다면 안시성 전투는 645년 6월 20일에 발생했다. 그때 당시의 상황을 간략하게 적어보겠다. 그 당시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나뉘어 있었고 고구려에는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면서 실질적인 왕권을 잡게 되는 시기이다. 고구려 바로 옆에는 당나라가 있었고, 당나라는 주변국을 집어삼키면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세력을 더 키우기 위해서 고구려를 먹어야 했던 당시 당나라의 태종 이세민. 그는 연개소문이 중국의 당나라와 나름의 친분이 있었던 영류왕을 죽였다는 핑계로 고구려로 쳐들어가게 된다.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고구려에는 요동성, 백암성, 개모성, 산성, 건암성, 안시성이 있었다. 당나라 태종은 고구려의 개모성, 요동성 등을 모두 한 번에 격파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안시성으로 쳐들어가는데... 태종 이세민의 깊은 빡침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88일 동안 아무리 쳐들어가도 무너지지 않았던 안시성
실제 역사를 보면, AD 645년 6월 20일부터 이세민은 안시성을 함락시키기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 근데.. AD 645년 9월 18일까지 무려 88일이라는 시간 동안 안시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동안 전쟁도 많이 치렀고 공성병기도 많았던 당의나라 군대들은 왜 안시성을 무너뜨리지 못했을까?
여기서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때 당시의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과 그에게 충성하고 따랐던 백성들의 단결력이 이 안시성의 방어력을 극강으로 끌어 울렸다고 말이다. 사실, 안시성의 주민 군대들(?)과 양만춘이 당나라 군대와 싸우기 전에 레벨업을 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연개소문과의 전투다. (이때 경험치를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였다고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는가? 왕을 죽였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던 안시성 양만춘과 왕권을 잡았던 연개소문과의 갈등은 불가피했다. 결국 연개소문은 안시성에 쳐들어왔는데, 지고 돌아갔다고 한다. 여기서 안시성의 주민들은 더 이상 주민이 아니고 정예 군대로 거듭났다.. 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수십만의 당나라 군대를 막았다는 것에는 조금 의문점이 많이 남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수십만 대군을 어떻게 막았을까? 물론 픽션이긴 하지만 영화 안시성에서 어떻게 막았는지에 대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본받고 싶은 성주, 양만춘 장군
영화 속 양만춘 장군은 강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으로 나온다. 이런 역할에 어울릴 것이라 생각해서 등장시킨 인물이 바로 조인성! (근데 개인적으로는 뭔가 카리스마가 적어서 조금 아쉬웠던..) 내가 영화에서 본 바로는, 뭔가 삼국지의 유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용한 카리스마와 통솔력, 리더십, 거기다 친절함까지.. 같은 남자가 봐도 좀 매력적이었음.
아무튼 이러한 양만춘 장군으로 인해서 안시성은 함락이 불가능한 요새로 업그레이드된다. (참고로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멸망시키면서, 양만춘 장군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다가 1636년경 역사서에 다시 양만춘 장군의 이름을 적었다고 한다. 그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였을까?)
화나다 못해 병들어서 죽게 된 당나라 태종 이세민
무려 당나라의 태종이라는 사람이.. 성하나를 함락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깊은 빡침이 느껴진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도 정말 빡칠만하다. 무려 88일이라는 기간 동안 함락시키지 못했다. 처음에 안시성을 공격할 때에 이세민은 이 전쟁에 자신이 있었을 텐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어? 어? 어?!!!! 하면서 점점 짜증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오죽 짜증 났으면 안시성보다 높은 토성을 쌓았을까? 근데 토성을 쌓긴 쌓았는데 결국 무너지면서 거기를 또 방어막으로 삼았던 양만춘 장군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아무튼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태종 이세민은 결국 당나라로 돌아갔고, 전쟁에서 얻은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도져서 죽었다고 한다. 뭔가 옛날이야기 속 악당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재미와 감사함이 공존했던 영화
예전에 명량, 한산, 노량 영화를 보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순신 장군보다 양만춘 장군은 덜 알려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 안시성에서의 성주로써 그가 할 역할을 다했고 그 이상의 결과도 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이세민이 당나라로 돌아간 후에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멸망시키지만, 안시성에서 당나라를 막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신라의 그 역사가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사 관련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나비효과'. 이 나비효과로 인해서 바뀌고 바뀌는 과정들을 보는 게 새삼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혹시 누가 알랴?그때 안시성에서 당나라를 막지 못했으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없을지도 모른다. 중국어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괜히 경건해지는 마음을 가지면서 이만 리뷰를 마친다. 역사 전체를 보면 안타깝지만, 이 영화 안시성 전투 당시만 생각했을 때에는 괜히 뿌듯해지는 영화이니 한번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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